유학칼럼

[1995년 플래시백(flash back)]필리핀 최초의 어학원 iec

비니대디 2012. 7. 6. 23:08

  "비" 는 참 여러가지 작용을 하네요. 지금처럼 가뭄에 어느 농부님에게는 단비를 넘어 황금비가

되어 주고요. 더운 여름밤 열대야를 식혀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오늘은 저에게 옛 추억이 뜨 오르게 하기도 하네요^^. 지금은 유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때는 한참 어린 학생때였어요. 얼마 동안

우유배달을 해서 조금 돈을 마련했습니다. 사실 그때 우유배달을 새벽에 하면서 느낀건 참 상쾌한 공기와 일한 보람이었는데 그만한 열정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지는게 쉽지 않네요.

얼마 안되지만 그 돈을 저축을 하고 얼마간 지나서 뭔가를 해야될때 그 돈으로 필리핀

어학연수를 결정했습니다.

 

 

 그랬던게 벌써 17년이나 되었네요. 제가 갔을때는 사실 필리핀에 학원이 거의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때의 학원이름이 LTI였고 지금은 IEC 어학원으로 이름이 바껴 있습니다. 이 학원 경우 1991년에

선교사님 교육을 목적으로 어느 선교단체가 세운 학원이었는데 필리핀 영어교육의 자신감으로 일

반인들을 교육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 못하던 시기에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어니 이 분야에서는 선구자라 할수 있죠.^^ 기본적인 1:3~4 그룹 수업의 포멧이

이때 생겼고요. 1:1 튜터링 개념이 이때 도입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필리핀에서 학원을 할려는 분들이나 유학원이나 비즈니스를 할려는 분들은 해연 유학원을

찾아 조언을 많이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는 필리핀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까요. 그때 어학연수

한 이후로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97년인가 바기오에서 대학생 캠프랑 주니어 캠프를 저도 열었습니다.

그때의 학생중 한명이 바기오에서 스파르타 공부를 정착시키기도 했고요. 이런 의미에서 해연 유학원이나 

거기에 속했던 IEC어학원이 필리핀 언어연수 시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때가 많이 뜨오릅니다.

 

  그때의 어학원은 4시간 수업이 기본이었고 필요에따라 1:1 수업을 튜터링을 했습니다. 기숙사와 학원이 붙어 있었고요. 점심시간이나 수업후에 족구 같은걸 즐기고 저녁이면 뒷뜰에 나가 산책하거나 운동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맞는 필리핀의 노을이란 정말 지금도 잊지못할 순간 순간 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몇명은 밤에 뒷뜰에서 목놓아 기도하기도 했고 지금은 또 그분들 몇명은 사역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연애를 하던 커플이 있었는데 마침내 결혼에 골인 하기도 했고요. 또 대기업 취직을 위해 오신분은 그 목적에 맞게 성공적 연수를 마치고 당당히 취업을 하기도 핶고요. 한참 갈등하던 전도사 형이 있었는데 얼마전 기독 신문에 목회자로 이름이 올라와 있기도 했던 정말 열정의 시간들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때 매니져를 했던 우리 해연유학원 서울 원장님이나 그때 또 해연유학원을 운영했던 지금의 iec 정항모 원장님이나 이런 향수가 너무게 짙게 베여 있습니다.

 

 그때와 달라진것은 필리핀 어학연수가 대세가 되었고, 필리핀의 어학원이 6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또 모든 유학원이 필리핀을 다루고 있고요. 필리핀을 거쳐 선진국 연수를 하는것도 대세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했던 필리핀 언어연수였습니다. 필리핀을 영어공부하러 간다면 정말 낮춰 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먼저 시작했던 iec 어학원은 필리핀 연수가 비즈니스로 성장하는 시기에 선점했던 시장을 빼앗겼습니다.  지금은 필리핀 대학과 필리핀 연수를 통한 선진국 대학을 준비하는 어학원으로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바꼈습니다. 그래도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시작했던 조그마한 열정의 공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필리핀 어학연수가 있게 되었다고요.

지금 아주 붐비는 어학 시장이 되어버린 필리핀이 아닌 그때 작지만 순박했던 필리핀이 장맛비에

그리워 지네요.